|
병술보서문(丙戌譜序文) (2006년) 병술보(丙戌譜) 발간(發刊) 참여 및 구보(舊譜) 복제(複製) 발간(發刊)을 주관하며 예기치 못한 종손(宗孫:찬우燦宇)의 타계(他界)로 인하여 六○○여 년간 이어온 종사(宗事)가 가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종사(宗事)의 앞날을 염려하던 바 여러 지파(支派) 문중의 일가님들과 협의(協議)를 거듭한 결과 기존 명칭(名稱)만 존재하던 종친회(宗親會)를 새로이 조직(組織) 구성(構成)하여 새로운 규약(規約)을 만들어 2004년 6월 11일 괴산(槐山) 문성전(文成殿)에서 재출발하는 총회를 열어 결의(決議)를 다지고 전주문중(全州門中)의 찬문(燦文)씨를 회장(會長)으로 선출하여 조직(組織) 활성화(活性化)와 문성전(文成殿) 성역화사업(聖域化事業)(남양주 찬성공 재실포함)과 종재환원사업(宗財還元事業) 및 족보발간사업(族譜發刊事業)을 추진(推進)하기로 정하여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상임부회장을 맡어 성역화사업(聖域化事業) 및 파보발간(派譜發刊)일에 총책(總責)을 맡기에 이르러 성역화사업(聖域化事業) 및 파보발간(派譜發刊) 사업자금(事業資金)을 각 지파내(支派內)에서 조달(調達)하여 사용하였고 고희(古稀)가 넘으신 편집장(編輯長)님과 편찬위원들의 불철주야(不撤晝夜) 노력으로 일이 뜻한바 대로 이루어진데 대하여 어찌 우리 일부 종사자(從事者)의 노력뿐 이었겠습니까? 이 모든 일이 선조님들의 보살핌이요 묵묵히 이끌어주며 아낌없이 성원(聲援)을 보내주시는 일가(一家) 분들의 한결같은 정성(精誠)이 아니겠습니까? 현재와 같이 문중 종사(宗事)가 어려웠을 때 거금(巨金)을 쾌척(快擲)하여(一九四三년) 시흥 장정공(莊靖公)묘하 종재(宗財)를 구해주신 문성공(文成公)의 十八대손 형묵(亨默)님, 一九二○년대에 부여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묘하 종재(宗財)를 구하여주신 순용(淳龍) 대부님께 일가를 대신하여 다시 한번 감사(感謝)드리오며 대를 이어 현재의 비정상적인 종재향방(宗財向方) 문제를 종중명의(宗中名義)로 환원(還元)하기 위하여 불철주야(不撤晝夜) 외로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현 종중(宗中) 會長(기동)님께 사의(謝意)를 표합니다. 또한 문성전(文成殿) 성역화사업에 막대한 금액(金額)을 기부(寄附)한 밥재 판서동문중(判書洞門中), 괴산(槐山) 대사헌공파종중(大司憲公派宗中), 장정공파종중(莊靖公派宗中), 목천 현감공파문중(縣監公派門中) 등과 여타 명목의 종주사(宗中事)에 헌성(獻誠)하신 문중과 종현님께 저의 소임(所任)으로 감사드립니다. 금번 발행된 파보(派譜)도 전 종손(찬우) 생존시 二○○二년 초에 계획(計劃)된 일이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에 항상 파보(派譜) 편찬(編纂)의 뜻을 가지고 지내온바 종친회 구성 후 지파(支派) 여러 일가분들과 뜻을 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정유파보(丁酉派譜 一九五七년)와 경자합보(庚子合譜)에 서기(書記)직으로 참여한 병기(丙基:진천문중)편집장님을 만나 용기백배(勇氣百倍)하여 힘을 얻었습니다. 회장(會長) 겸 위원 기동님, 고문(顧問) 겸 편찬위원 찬세(燦世)님, 서무(庶務) 겸 편찬위원 일채(一采)님 등의 심혈(心血)을 기울인 협조(協助)로 본인은 시작만 하고 심부름만 하였을 뿐 이와 같이 훌륭한 파보(派譜)가 이루어짐은 오로지 간사 분들의 탁월(卓越)한 학식(學識)과 노력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전 派譜(계해보 서기 一九八三년)때 一만六천여 종원(宗員)보다 三○% 정도 증원(增員)된 二만여 종원(宗員)이 등록이 된 것은 특출(特出)한 방법과 노력으로 구보(舊譜)에 무단(无單)된 다수 종원(宗員)을 발굴(發掘)한 원채(元采:진천문중)님과 찬억(燦億:밥재문중)님의 공(功)이 크다 하겠습니다. 현재와 같이 교통통신(交通通信)이 발달된 시대에도 二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열심히 하였는데도 만족감을 표할 수 없음이 솔직한 심정인데 주위 여건(與件)이 어렵던 시대에 대동보(大同譜)와 파보(派譜)를 만드신 (西紀一七○九年 己丑世譜)의 농포공(農圃公) 상기(尙驥), (西紀一八○○年 庚申大同譜)의 도정공(都正公) 원림(元霖), (西紀一八四五년 乙巳大同譜)의 감찰공(監察公) 익렬(翼烈), (西紀一八七五年 乙亥大同譜)의 도유사(都有司) 재기(在麒), (西紀一八九八年 戊戌大同譜)의 주부공(主簿公) 순좌(淳佐), (西紀一九三一年 辛未派譜)의 통훈대부(通訓大夫) 순학(淳學), 西紀一九五七年 丁酉派譜)의 도유사(都有司) 재하(在夏), (西紀一九八三年 癸亥派譜)의 순형위원장(淳衡委員長) 등 구보편찬(舊譜編纂)을 주관(主管)하신 분과 관계자 선조(先祖)님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경의(敬意)를 표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 하동정문(河東鄭門)의 훌륭한 문화적(文化的) 유산(遺産)이 전해져 내려오고 선현(先賢)님의 혼(魂)이 배인 구보(舊譜)가 전국에 한두벌로 분질(分帙)되어 보관되어온 것을 본인의 적은 성의(誠意)로 이 훌륭한 구보를 복제(複製) 발간(發刊) 널리 보급하오니 이 뜻을 깊이 이해하여 주시고 구보 복제 발간에 협조(協助)하여주신 찬문(燦文) 전 회장(기축보,을사보,을해보 복사본 제공), 괴산 대사헌공파 순복(淳福) 회장님이 경신대동보 진본(眞本)을 제공하고 다음 광주(光州)의 석진(무술대보 제공)님 신미보(辛未譜)의 서울 광현님, 경자대보(庚子大譜)를 제공한 구채(밥재문중)종현님께 감사(感謝)드리고 본인의 뜻과 제공자(提供者) 분들의 뜻을 받들어 우리의 종적(宗績)을 빛내고 조상님을 공경(恭敬)하는 마음을 항상 지니고 살며 종사(宗事)엔 위 아래와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말고 협심(協心)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족보(族譜)란 일가간에 화목(和睦)을 다지고 서열(序列)을 알며 촌수(寸數)의 가깝고 먼 것을 분별(分別)하고 선대(先代)로 부터 이름 높은 여러 조상들이 공신(功臣)과, 도학군자(道學君子)며, 충신(忠臣), 효자(孝子) 등 뚜렷한 행적(行蹟)이 있는 분들을 분별하여 공(功)을 높이 받들며 연대(年代)가 늘어나면 자손들이 자연히 흩어져 살게되니 그 근원(根源)을 알 수 없고 선조(先祖)와 방조(傍祖)의 묘소(墓所)도 알 수 없으니 한 가정(家庭)에 꼭 족보(族譜)를 모시고 선대(先代)를 알고 자손(子孫)에게 우리 일가에 근원(根源)을 알려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병술보(丙戌譜) 발간에 협조(協助)하여 주신 일가분들과 수단(收單) 확보(確保)에 노력하여 주신 지파(支派) 임원(任員)분 및 보소(譜所) 간사(幹事) 분들께 감사(感謝)드리며 우리 종중(宗中)과 일가분들의 무궁(無窮)한 발전(發展)을 기원(祈願)합니다.
병술(丙戌) 九月 하순(下旬)에 후손(後孫) 찬희(燦熙) 삼가 서문(序文)을 씀
병술보발문(丙戌譜跋文)
족보라 함은 한 종족(宗族)의 계보(系譜)로서 부계(父系)를 중심으로 한 혈연관계(血緣關係)를 나타내는 기록 문건이다.우리나라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걸쳐 보첩(譜牒), 세보(世譜), 세계(世系), 세지(世誌), 가승(家乘), 가보(家譜) 등 여러 형태, 명칭으로 불려지면서 오늘에까지 족보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우리 하동정문(河東鄭門)도 一七○九년 기축세보(己丑世譜)를 시작으로 하여 계해보(癸亥譜)(一九八三년 발간)까지 九회를 발간하여 족보가 있는 가문(家門), 명문가문(名門家門)으로 전통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二十一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적인 풍조와 우리들의 정신문화적 관념이 가족제도(家族制度)에 대한 큰 변화를 가져 오고 있다. 二○○五년(乙酉) 우리나라 민법(民法)개정을 통하여 우리의 전통적인 호주제도의 폐지,姓과 本의 변경 등 가족제도(家族制度)의 뿌리가 흔들리며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 계해보를 발간한지도 二十三년이 넘어 한 세대(世代)가 거의 다 되었고 새로운 족보발간의 필요성(必要性)이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이에 우리 하동정씨 문성공파 종중에서는 역점사업의 하나로 병술보(丙戌譜)를 발간하기로 결의하고 병술보(丙戌譜) 편찬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에 소생들이 병술보 편찬위원회 편집위원으로 위촉되고 이를 一년六개월 동안 추진하게 되었다. 각 지파 문중 회장님들이 열심히 수단을 모으고 각 지파별로 수단을 권장하여 계해보 보다 四千여명의 수단인원이 증가되었으며 누보(漏譜)되는 종원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나 혹시 누보된 종원이 있을까 염려되는 바이다. 이번 병술보(丙戌譜)를 편찬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첫째 : 젊은 세대가 족보를 가까이 하고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한글(한자)과 한자를 병행하거나 한글화에 중점을 두었다. 둘째 : 시대적,역사적 명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가능한 한 왕호와 간지,간지와 서기년도를 병기하도록 노력하였다. 셋째 : 젊은 세대들과 국제화추세에 따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컴퓨터,CD족보 등 IT문명에 접목할 수 있고 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 체제를 평이하게 작성하여 후배들에게까지 족보의 발간 보존을 염두에 두었다. 이제 병술보(丙戌譜)를 편찬,발간함으로써 우리 하동 정문(鄭門) 족보사(族譜史)의 十回째 족보가 이 세상(世上)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이는 우리 선대 조상님들의 얼과 혼,그 빛나는 업적(業績)이 담겨 있고 우리 후손들의 일가(一家)되는 끈끈한 정,혈연관계,항고(行高)관계,지연(地緣)관계 등 계보체계(系譜體系)가 확립되는 보전(寶典)임을 자부하게 된다. 이 우리 정문(鄭門)의 귀중한 역사자료를 소중히 간직하고 보전하여 문성공(文成公) 후손됨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후손 천세만대(千世萬代)에 이르는 번영과 발전을 기원하면서 삼가 병술보간행발문(丙戌譜刊行跋文)을 기록하는 바이다.
西紀二○○六년 병술(丙戌) 九月 하순 후손(後孫) 족보편집장(族譜編輯長) 병기(丙基) 후손(後孫) 편찬위원(編纂委員) 일채(一采) 후손(後孫) 편찬위원(編纂委員) 찬세(燦世) 삼가 발문(跋文)을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