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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대동보(乙亥大同譜) 서(序) 및 역문(譯文)(1875년) 서기1875년(乙亥年)에 발간한 구보서문 우리 하동정(河東鄭)은 동방거족(東方巨族)으로 아조(我朝)에 들어와서 문성공(文成公)의 문장(文章)과 공훈(功勳)이며 문헌공(文獻公)의 도학(道學)은 가장 유명(有名)하였으니 이는 국사(國史)와 야승(野乘)에 모두 고증(考證)이 있는 일이다. 정문(鄭門)에서 간행(刊行)한 보책(譜冊)은 재기가(在麒家)에서 대대(代代)로 닦아온 문적(文籍)이다. 오대조(五代祖) 농포공(農圃公) 고조부 사간공(高祖父 司諫公 )이 수단(收單)을 모아서 정비(整備)하였고, 증조부 도정공(曾祖父 都正公)이 처음으로 간행(刊行)하였으며 경신보(庚申譜)를 선고 예안공(先考 禮安公)이 중간(重刊)하시니 곧 을사보(乙巳譜)이다. 을사보 간행(乙巳譜 刊行)까지의 경과사(經過事)가 서문(序文)에 소상(昭詳)히 기재(記載)되여 있다. 불초(不肖) 감(敢)히 속간(續刊)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착수(着手)하였는데 을사년(乙巳年)에서 지금까지는 벌서 삼십년(三十年)이 되였으며 그동안 과환(科宦) 생졸(生卒) 분원(分源) 파류등(派流等)을 불가불(不可不) 수재(修載)하여야 함으로 모두 전례(前例)에 의하였다. 제종(諸宗)과 합의(合議)하여 시작(始作)하였으며 전일(前日) 을사보(乙巳譜)때 경열공파(景烈公派)가 수단(修單)을 보내지 않어 한(恨)스러웠으나 금번(今番)에는 기일내(期日內)에 수단(修單)을 보내와서 합보(合譜)를 하게 되었으니 일문(一門)의 다행(多幸)이요 재기(在麒) 또한 한(恨)이 없으며 감개무량(感慨無量)한 바이다. 선세(先世)의 일은 모두 서울에서 주변(主辨)하였는데 이제 불초(不肖) 영외(嶺外)에 전락(轉落)하여 가성(家聲)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데 제종(諸宗)이 오히려 간사(幹事)의 중임(重任)을 맡기니 영광(榮光)스럽기도 하고 또한 부끄럽기도 하도다. 감당(敢當)하지도 못할것을 감(敢)히 사양할수도 없어서 중책(重責)을 맡게 되였으니 이에 그 전말(顚末)를 기록(記錄)하여 남기고자 함이요 후손(後孫)의 무궁(無窮)한 발전(發展)을 비는 바이다.
고종 십이 을해 1875녀 월 일 高宗 十二 乙亥 1875年 月 日
불초후손 재기는 삼가 서하노라 不肖後孫 在麒는 삼가 序하노라
을해대동보발(乙亥大同譜跋) 및 역문(譯文)(1875) 을해대동보 발(跋)의 역문
옛날 성현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착하다. 일가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제일이고 친목을 도모하려면 족보를 모셔야 한다 . 일가간에 친목을 도모하려는 마음은 어느 사람이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족친간에 친밀을 도모하려고 족보를 간행하려 하는 것은 여러 어른들이 미처 못 하신 것을 기록하려는데 있는 것이나 우리 정씨가 대보를 간행한지가 오래 되었다. 옛날 경신(庚申)년에 합보를 할때에 고조부 지우재(之友齋)공 이 모든 일을 주선하였고 을사(乙巳)년 족보 때에는 조부 무일재(無一齋)공이 다시 시작하셨다. 그 후 계유(癸酉)년 때에는 선고(先考-아버지) 사과공(司果公)께서 八道의 족친들과 謀議하여 거의 發刊단계에 이르렀을 때 마침 큰 흉년을 만나서 일을 중지하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몇 해만 내가 더 살면 족보가 출간함을 볼 것인데 하시드니 불행하게도 기묘년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아버지 말씀이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족보가 완성하지 하지 못 한 것이 내 평생에 한이 되도다. 소상 대상도 지내고 담제도 끝났고 해서 추위와 더위를 무릎 쓰고 東西南北으로 흩어져있는 족친을 찾아서 여러분의 의견을 모아 다시 보소를 차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족보를 간행 하려던 높은 뜻을 이어받고자 함이다. 나와 같이 지식도 별로 없는 사람이 대보의 책임을 감당해 나갈수가 있으리오 내가 사양하지 못한 것은 여러 족친의 권고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족보의 완성을 보려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뿐이다. 또 경렬공(景烈公)파가 합보를 하게 되었고 하원군(河原君)파도 처음으로 족보를 같이 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전에 하지 못한 일이니 우리 문중의 다행한 일이다. 족보를 시작한지 十년도 못되어서 사람은 벌써 두 대(代)가 되었으니 三十年 一대 동안에 노인은 세상을 떠나고 새로 낳은 사람은 장성하였으니 그 수를 어찌 헤아리리오. 지금은 을사(乙巳)년 족보의 뒤를 이어서 간행하는 것이나 뒷날에도 오늘을 이어서 족보를 간행함이 있을 것을 기다리는 바이다.
고종 십이 을해 1875년 월 일 高宗 十二 乙亥 1875年 月 日
불초후손 순용은 삼가 발 하노라. 不肖後孫 淳龍은 삼가 跋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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