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경 조(鄭 敬 祖)

 

대사헌공 휘 경조 묘소

공의 자(字)는 효곤(孝昆)이시고 문성공(麟趾)의 넷째아들이시다.

공은 1455년(세조 1년 . 乙亥)에 태어나셨다.

공은 어릴 때부터 영리하고 재주가 뛰어나 부모님의 가르침을 잘 이어받았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1474년(성종 5년. 甲午)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85년(성종 16년. 乙巳)에는 문과별시병과(文科別試丙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弘文館 校理) 승정원 도승지(承政院 都承旨)와 예조(禮曹), 호조(戶曹)의 참판(參判).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시고 사헌부 대사헌(司憲府 大司憲)을 배명 받았으며, 뒤에 평안도 관찰사(平安道 觀察使)로 나가시게 되었다.

대사헌공의 재실 숭모사 전경과 신도비

 

공은 성품과 도량이 강직하고 조용하였으며, 풍채와 자태가 아담하고 단정하였다.

그리고 행실도 공손하여 대인관계도 온후하여서 남을 좋아하는 것은 보았어도 남을 미워하는 것은 보지 못하였다.

1498년(연산 4년. 戊午) 7월에 별세하시니 향년 44세였다. 이해 9월12일에 장사(葬事)지냈으며 묘소는 남양주군 벽내면 화접리 산 유좌원(酉坐原)에 모셨다. 그 후  2006년 정부의 공공주택 개발계획에 의거 공과 배의 묘소를 충청북도 괴산군 소수면 아성리 산4 곤좌 간향으로 이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