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현 조 (鄭 顯 祖)

 

하성위 휘 현조 묘소

공의 자(字)는 효중(孝仲)이시고 문성공(文成公 - 麟趾)의 둘째아들 이시다.

공은 1440년(세종 22년 庚申)에 태어나셨다. 공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영민(英敏)하여 일찍이 가정 교훈을 잘 이어받아 덕행(德行)과 기량(器量)을 잘 닦았다.

 

세조(世祖)가 왕위에 오르기전 사가(私家)에 계실 때 공의 집에 오셔서 공의 기특함을 보시고 바로 의숙공주(懿淑公主)와 결혼을 시켜 사위를 삼으셨다.

공은 처음에는 음보(蔭補)로 돈령부(敦寧府)의 주부(主簿)로 관직에 입문하였다.

하성위 휘 현조 신도비

 

그 뒤 세조(世祖)가 왕위에 즉위하자 숭덕대부 하성위(崇德大夫 河城尉)로 특진하시고 공은 상(上)께서 총애하여 항상 자기 곁에서 다른 사무는 금하고 오로지 후설지신(喉舌之臣)으로 왕명(王命) 출납(出納)등만 하도록 하셨다.

 

어느 날 상(上)께서 공을 아주 가상히 여겨 웃으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은 비록 어리지만 열 사람을 대적할 수 있다”고 칭찬하셨다. 그리고 세조(世祖)가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산정(刪定)하실 때도 공을 참여시켰다.

하성위 위토 약도

 

1468년(세조 14년. 戊子)에 상(上)께서 친히 책략 있는 선비를 뽑는 별시 연영과(延英科)의 을과(乙科)에 2위(二位)로 의빈(儀賓)으로써 급제하니 자고로 전례없는 영화라고 하여 왕실의 귀염을 독차지 하였다. 예종(睿宗) 즉위초(初)에 역신(逆臣) 남이(南怡)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수충보사 정난익대 순성명양 경제홍화 좌리공신」

 「輸忠保社 定難翊戴 純誠明亮 經濟弘化 佐理功臣」 의 2등(二等)에 책록되어 유록대부(綏祿大夫) 의빈부의빈(儀賓府儀賓) 하성부원군(河成府院君)에 봉해지셨다.

하성위 재실

 

1469년(예종 1년. 己丑)에 예종 임금이 승하(昇遐)하시니 대통(大統)을 이을 분이 정해지지 않자 세조비(世祖妃)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성종(成宗)을 왕으로 세우고자 할 때 공이 궁(宮)안의 복도에서 혼자 황급히 주선하여 대책을 세우셨다.

 

그리하여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를 받으셨는데, 1504년(연산10년.甲子)에 갑자 사화로 국내가 혼란할 때 공은 죄도 없이 황해도 안악(安岳)으로 폄출(貶黜)되시어 그해에 적소(謫所)에서 향년 65세로 별세하시니 그 후 2년 뒤에 (1506년 연산군 12년. 丙寅)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중종(中宗)이 등극하셔서 모든 관직을 다시 복원(復元)시켜 예장을 지내고 부조지전(不祧之典)을 내리셨으며 그리고 시호(諡號)를 빈쟁(빈玎)이라 내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