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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원 림(鄭 元 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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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자(字)는 계인(季仁) 호(號)는 거안당(巨安堂)이시고 문성공(麟趾-인지)후 장정공(崇祖-숭조)의 8세손인 농포공(尙驥-상기)의 손자이며 겸재공(恒齡)의 아들이시다. 공은 1731년(영조 7년. 辛亥)에 태어나셔서 1789년(정조 13년. 乙酉)에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어 순릉(順陵)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뒤에 군자감의 봉사와 평시서의 직장.사옹원의 직장등을 역임하시었다.
공은 성품이 너그럽고 강직하였으며 구김살이 없이 명랑하시어 남과 대화를 하여도 점잖게 하시고 남을 이길려고 하지 않았다. 또 시(詩)와 예(禮)에 박식하여 여러번 예조의 초시에 합격하고 뒤에 대과를 보러 갈려고 하는데 집이 무너져 그것을 고치느라고 결국 과거를 보러가지 못하였다.
뒤에 상서(尙書) 엄숙(嚴璹)이 공을 세자 익위사에 천거하여 문효세자(文孝世子)의 책을 관리하도록 하였으나 세자가 죽고나니 일이 없었다. 공은 역법을 잘 알았으나 뜻을 펴지 못하였는데 우연히 파주(坡州)를 지나다가 마상(馬上)에서 산의 형세를 보니 자연적으로 얼룩소같이 생겼음을 신의 도움으로 깨달아 하도(河圖) 중 7.8.9.6의 안팎의 네가지 상과 괘를 그려 괘가 어긋나지 않도록 차례대로 12절로 나누어 지도(地圖)를 제작하여 펴낸 것이 많이 있고 주역을 배워 계사(繫辭)와 잡괘의 뜻을 풀어 뺄것빼고 넣을 것 넣고 또 선후를 가려 놓고 천상(天象)을 여러번 풀면서 비어 있는곳과 맺힌곳. 그리고 하천이 없는곳을 이리저리 끌어모아 지도를 제작하고 또 지물(地物)을 설명해 놓은 책이 여러권 집에 소장되어 있었다.
뒤에 통정대부행돈령부도정(通政大夫行敦寧府都正)의 품계를 받고 1800년(정조 24년. 甲申) 8월 13일에 별세하시니 묘지(墓誌)를 박규순(朴奎淳)이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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