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상 기(鄭 尙 驥)

 

공의 자(字)는 여일(汝逸) 호(號)는 농포(農圃)이시며 문성공(麟趾-인지)후 장정공(崇祖-숭조)의 8세손이시다.

공은 1678년(숙종 4년 戊午)에 태어나셨으며 일곱 살때 아버님을 여의고 몸이 약하여 과거(科擧)를 단념하고 뜻을 학문에 두었다. 공은 어려서부터 고상(高尙)한 마음과 뜻을 가지고 원대한 포부로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반드시 옛 성현(聖賢)들과 같이 학문을 깊고 원대하게 탐구할 것을 마음속에 스스로 기약하고 조용히 들어 앉아 많은 책을 읽었다.

 

또 공이 말씀하시기를“선비가 비록 궁하게 되어도 뜻을 굽히면 안된다”고 하시더니 과연 백성을 다스리고 군사(軍士)를 다스리는 것과 산천(山川) 경제(經濟) 성곽(城郭) 차갑(車甲)이하 의약(醫藥) 기계(機械) 잠적(蠶績) 농경(農耕) 등 사람이 생각할 수 있고 말로 열거할수 있는 것은 못하는 것이 없어 국민생활을 크게 도왔으며, 또 사람들에게 점을 치고 문자를 써서 사람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것은 못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높은 선비들이 입던 웃옷의 제작법을 잃어가고 있으므로 공이 그 문헌을 살펴 원본대로 제작하여 입도록 하였다.

 

또 오랫동안 전국(全國)을 답사(踏査)하고 과학적(科學的)인 백리척(百里尺)의 축척법(縮尺法)을 이용하여 팔도도(八道圖)를 도별로 제작해 거기에다 역대의 국경변천역사와 군현(郡縣)의 연혁(沿革)과 관방(關防)의 성곽(城郭) 해로(海路) 궁실(宮室)등에 대한 변천을 기술했으며 그리고 사람들에게 수행(修行) 섭양(攝養) 근업(勤業)의 3조목을 들어 가르치셨다.

 

공은 성호(星湖) 이익(李翼)선생의 4대 제자중의 한분이며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가 이때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는데 공은 특히 지리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이시다. 공의 아들 겸재공(恒齡-항령)이 시종(侍從)하였던 추은(推恩)으로 공이 통정대부행첨지충추부사(通政大夫行僉知中樞府事)의 벼슬을 가자(加資)받았다.

 

공은 우리나라의 지도제작(地圖製作)에 과학적인 큰 공헌을 하신 분이며 저서로는 인자비감(人子備鑑) 농포문답(農圃問答) 심의설(深衣說) 도검편(韜鈐篇) 향거요람(鄕居要覽)등이 있으며 문헌(文獻)으로는 성호문집(星湖文集) 치군요람(治郡要覽) 동국여지도(東國輿地圖) 등 많은 저서와 문헌을 남기시고 1752년(영조 28년 壬申) 8월5일 75세로 별세하셨다.

 

공은 하동정씨(河東鄭氏) 밀직공파 최초의 족보인 기축보(己丑譜. 1709년 숙종 35년)를 수보(修譜)하였으나 발간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