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득 열(鄭 得 說)

 

1565년 명종20년(乙丑)에 출생하여 字는 군석(君錫)이며 장정공의 三子 승염(承廉)의 후손이다.

1588년 선조21년(戊子)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1592년 선조25년(임진) 4월에 사천현감(泗川縣監)으로 부임하였으며 임진왜란 전쟁중에 진양전투(지금의 晋州)에 출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사(戰死)하니 이때 28세의 젊은 나이에 위국충성(爲國忠誠)으로 국사(國史)의 사적기록(史蹟記錄)에 남았다.

이로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올랐으며 증 훈련원정(贈 訓練院正)이 되고 숙종왕 때에는 진주동성(晋州東城)에 순절비(殉節碑)를 세웠으며 순종왕때에는 병조판서의 증직(贈職)과 충장공(忠莊公)의 시호(諡號)를 받았다.

 

충장공(諱 得說) 묘소

하성부원군묘소 아래

 

정려각 전경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 입구

정려4인 : 충장공(15세 휘:득열) 충결공(16세 휘:택뢰)

열녀 증정부인 동래정씨(충결공의 배위), 효자공(17세 휘:천세)